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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6년간 적자, 회계장부 다 까라”…‘기업 핸들’ 한쪽 잡은 주주들
- 작성자 :
- 관리자
- 작성일 :
- 2026-04-17

경기도 이천에 있는 코스맥스엔비티 생산 공장. 사진 코스맥스엔비티
코스맥스그룹의 건강기능식품 계열사인 코스맥스엔비티의 소액주주모임 ‘주주행동연합’은 지난 9일 ‘회계 장부 열람 허용 가처분’ 승소 판결문을 받아냈다. 6년간 이어진 회사의 적자 원인을 파악하겠다며 올해 2월 수원지방법원에 경영권 분쟁 소송을 제기한 결과, 법원이 소액주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들은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제안으로 신규 감사 선임을 추진했지만, 주총의 문턱은 넘지 못했다.
주주연합 측은 “적자가 쌓인 가장 큰 원인은 미국 법인 투자 실패”라며 “회계 장부를 확인해 지배구조와 이사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증거를 확보하고 회사 측에 시정을 요구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민·형사상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소액주주·행동주의, 경영권 분쟁 증가

김경진 기자
그간 ‘오너가(家)의 집안 싸움’으로 여겨져 온 경영권 분쟁이 ‘대주주 vs 소액주주·행동주의 펀드’의 대결로 확산하고 있다. 세 차례의 상법 개정을 통해 소액주주의 권한이 한층 강화된 결과다.
16일 중앙일보가 아주기업경영연구소와 상장법인 정기주총·경영권 분쟁 소송 공시를 분석한 결과(기타법인 제외), 올해 정기주총 기간(2월 1일~3월 31일)에 경영권 분쟁 소송을 벌인 기업은 총 44곳으로 지난해(31곳)보다 41.9% 늘어났다. 경영권 분쟁 중인 기업의 주주들이 이사 또는 감사 해임·선임을 제안한 경우는 17개사로 지난해(14개)보다 21.4% 늘었다.
경영권 분쟁이 없는 기업에서도 주주들이 대거 안건을 발의했다. 올해 정기주총 기간 총 56개 기업에서 206건의 주주제안이 나왔는데, 지난해(43개, 167건)보다 기업 수는 30.2%, 안건 수는 23.3% 늘어난 수치다. 주주제안 내용을 살펴보면 이사 또는 감사 해임·선임(80건)에 관한 안건이 가장 많았고 정관 변경(66건), 주주환원(30건)의 순이다.
김남은 아주기업경영연구소 본부장은 “최근 상법 개정과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 원칙) 확산으로 주주들이 이사회 구성이나 경영 의사 결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며 “주주제안이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 지배구조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진 기자
해외 소액주주, 경영 참여도 높아

지난달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개최된 제52기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 현장. 공동취재단
해외에서는 소액주주와 행동주의 펀드, 기관투자가 등이 기업의 성장 전략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던 닌텐도는 주요 수익원인 콘솔(게임기기) 시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자 지분율 1% 미만이던 행동주의펀드 ‘오아시스 매니지먼트’는 세 차례 공개서한을 통해 모바일 시장 진출을 촉구했고, JP모건 등 대형 기관투자가의 지지를 이끌었다. 결국 닌텐도는 2016년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를 선보였고, 출시 열흘 만에 주가가 2배로 뛸 만큼 흥행에 성공했다.
엑손모빌의 경우 2021년 신생 행동주의펀드 엔진넘버원이 0.02%의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화석연료 중심 경영 전략을 정면 비판하며 이사회 4명 중 3명을 갈아치웠다.
국내의 경우 올해 DB손해보험 주총에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주주제안 이사 선임에 성공했다. 보험업계 최초이자 시가총액 10조원 초과 상장사 중 첫 사례다.
“경영 안정 위협” 우려도
하지만 급격한 변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과도한 주주권 행사가 기업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영 전략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행동주의펀드와 국민연금공단이 의결권 행사에 과도하게 나설 경우 기업의 경영 부담이 증가해 자본시장 전체의 활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반 주주의 권한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혼란이 올 수 있지만, 기업들도 주주친화적 흐름을 기업가치 제고와 자본 정책을 재설계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미·김수민 기자 gaem@joongang.co.kr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0947